개인적으로 참 기억에 많이 남았던 후쿠오카 3박4일 여행. 2017년 봄부터 이번 여름에는 꼭 해외여행을 갔다오겠다고 벼르던 나는, 일본 타지역이나 동남아도 생각하던 끝에 결국 후쿠오카를 가기로 결정했다. 언제나 떠들썩하던 단체 톡방에는 평소에 해외여행갈 거라며 자기만의 포부를 밝히던 녀석들투성이었지만, 정말 일시적인 뽐뿌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친구들과 상의하며 계획을 짜기보다는, 나 갈 테니까 내 일정에 맞춰서 갈 녀석은 따라와 하는 편이 이래저래 마음이 편했더랬다. 누구 계획에 맞추다가 흐지부지되느니, 혼자라도 가고 싶었으니까. 평소에 계획 짜는 걸 귀찮아하지만, 막상 짜기 시작하면 영혼을 갈아서 계획을 세우는 타입이기 때문에, 며칠 동안 가고 싶은 곳을 추려서 아주 타이트하게 계획을 세웠더랬다.
가기 전에 반드시 가야할 곳으로 체크한 곳은, "후쿠오카 타워, 모모치 해변, 다자이후, 야나가와, 기린맥주 공장, 유노하나 온천". 기린 맥주 공장은 본디 후쿠오카 아사히 맥주공장 견학이 유명하다길래 거길 가볼 생각이었지만, 예약을 하려했던 시점에 이미 아사히는 일정이 가득 차 있었다. 특히 한국어를 비롯한 외국어로도 예약이 가능한 터라 인기가 많았지 않나 싶다. 왜 그리 맥주공장에 가고 싶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안가도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지만, 처음에는 별 생각 없다가 갈 수 없다고 하니까 괜시리 오기가 생겨서 더 가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더 검색해보니 기린 맥주 공장이 있다고 하길래, 일정을 확인해보니까 아사히와는 다르게 텅텅 비어있었다. "오 이런 것도 있네", 하고 옳다꾸나 예약을 할라 했더니, 직접 공장으로 전화로 일정을 예약해야만 했다.. 그 때만 해도 일본어로 입을 떼본 적도 그다지 없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강한 충동으로 해외전화로 전화를 걸었더랬다. 다행히도 친절한 사람이 대응에 응해줘서, 떠듬떠듬이었지만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느낌이었다. 예약을 신청하고 싶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신청이라는 단어를 음차대로 신세이(申請)라고 말하니, 알겠다는 뉘앙스로 그럼 이 날짜에 「申し込み」하고 싶다는 말이시죠 하면서 되묻길래, 무슨 말인지 몰라서 벙쪘더랬다. 뉘앙스로 얼추 되었나보다 하고 넘길 수도 있었겠지만 기껏 해외 전화로 했는데, 막상 갔는데 예약이 안되었다고 하면 너무 절망적일 것 같아, 신세이하고 싶다는 말만을 반복했다. 이 쪽이 못 알아듣고 있다는 걸 대충 파악하고, 안내원이 예약되었다는 말로 얘기해주길래 수긍하며 감사하다고 하고 끊었다. 전화를 끊고 사전을 찾아보던 나는 그 때 처음으로 「申し込み」가 신청이라는 것을 알았다..
떠나기 한 3주쯤 전이었을까, 후쿠오카에 갈 거라고 단체 카톡방에 이야기를 하니, 왜 혼자 가냐고 나도 같이가자고 하던 친구 녀석이 한 명 등장했다. 이 날에 갈 건데 올 수 있냐 하니 그렇단다. 그렇게 남자 2명의 3박 4일 해외여행이 성사되었다. 지금도 사진찍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 때는 사진에 한창 빠져있었을 때였다. 잠깐 사진작가용 사진기를 일시적으로 빌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에, 해외여행갈 때 써도 된다는 말도 나왔겠다, 옳다꾸나 후쿠오카에서 멋진 사진을 건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들떴다. 후쿠오카 여행의 추억이 이쁘게 포장되어 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여기서 찍은 사진들이 꽤 마음에 드는 사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뜨거운 햇빛과 높은 습도에 옷에 딱 달라붙는 땀띠의 기억마저, 일본풍의 나른한 사진의 한 장면으로 기분좋게 박제되었다.
나는 이 여행에서 처음으로 에어비앤비를 이용했는데, 총 두 군데를 이용했다. 한 번은 후쿠오카 하카타역 근처에서, 한 번은 후쿠오카와 쿠마모토 사이 즈음에서였다. 하카타역 근처의 에어 비앤비는 야쿠인(薬院)역 근처였던 것이 기억난다. 왜 내 머릿속에 저 두 글자가 아직도 선명한 지는 모르겠지만. 이 쪽 에어비앤비는 집주인이 따로 살지 않는 방에 임대업을 놓는 느낌이었다. 후쿠오카의 여러 명소로부터 접근성이 좋아 만족스러웠던 느낌. 다만, 해프닝으로는 내가 한창 샤워하고 있는데 바선생이 나왔다고 잡아달라던 친구의 외침에, 나라고 안 징그럽겠냐고 퉁명스럽게 나와서 잡았던 기억이 있다. 두 사람이 있을 때, 한 사람이 평정심을 잃으면, 다른 한 사람은 평정심을 유지하게 되는 마법. 크기가 정말 손바닥만해가지고 꽤 애먹었긴 했지만.. 어쨌든 잡았으니 다행. 남쪽이라 더 컸나?
그리고 후쿠오카의 관광지를 모두 돌고 다자이후와 야나가와로 향하기 위하여, 숙소도 다른 숙소로 옮기게 되었다. 여기서 묵었던 숙소는 싼 것에 비해 숙소의 퀄리티가 매우 좋았는데, 다만 해가 질 무렵이면 주변에 가로등도 거의 없어서 정말 아무 것도 안보였다. 그래도 저녁 무렵 편의점 음식과 맥주를 이것저것 사와서 먹었는데, 대체로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간식을 거의 든든한 한끼처럼 먹었을 정도였으니. 친구가 맥주를 별로 안좋아하는 터라 나만 먹게 되서 좀 아쉬웠지만, 처음 먹어본 에비스 맥주가 무척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후쿠오카 여행을 찾아보면, 꼭 다자이후와 야나가와도 끼길래 후쿠오카에서 가까운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꽤 멀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안 갔으면 후회할 정도로 둘 다 각자의 운치가 있었다. 특히 시간이 없으면, 야나가와 뱃놀이는 꼭 체험해보기를 추천한다. 돈코부네(どんこ舟)라고 불리는 나룻배를 타고 한적하니 근처를 바라보면서 사진을 찍어보자. 겨울에는 기간한정으로 코타츠부네(こたつ舟)를 운영하는 모양. 돈코부네에 화로를 넣은 코타츠를 실어, 배를 따뜻하게 데우며 전진한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기린 맥주 공장에서 무사히 예약이 된 것을 확인하고, 공장 이곳저곳을 투어로 견학할 수 있었다. 투어를 끝내면 갓 짜낸 기린 맥주를 무료로 시음할 수 있었는데 땡볕에서 사우나를 한 터라 한 3잔 정도를 연거푸 마셨더랬다. 그 날의 일정이 온천에 갔다가, 오호리공원을 포함해서 유명하다는 공원 3개를 더 돌아야 하거늘 앞뒤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일단 마셨다. 그도 그럴 것이 편의점 캔맥주나 가게에서 먹는 생맥주와는 전혀 다를 정도로 너무 시원하고 맛있었으니까.. 이 때 거품과 맥주의 비율을 절묘하게 맞추는 방법도 소개받았던 것 같은데.. 다 까먹었네.
그리고 향했던 유노하나 온천. 넓은 야외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곳이며 다양한 욕탕이 있어 당시에도 매우 좋다고 느꼈지만, 동시에 그 때는 이 정도 규모의 온천은 다른 데에도 있을 법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도쿄에 살면서 이곳저곳의 온천을 방문해봐도, 이 정도 규모의 야외온천은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새삼스레 유노하나의 대단함을 도쿄에서 느꼈더랬다. 이 때 유노하나에서 있었던 해프닝으로는, 욕탕 규모가 매우 커서 친구와 잠깐 다른 탕에 들어가기도 하며 서로가 시선에서 보이지 않은 경우가 있었는데, 내가 친구한테 얘기도 하지 않고 야외 돌침대에서 수건을 얼굴에 덮고 자 버린 것이다.. 땡볕에서 강행군을 하다가, 맥주도 먹고 욕탕도 들어갔겠다.. 기분좋게 잠이 오길래 아무 생각 없이 잤다.. 친구는 내가 혼자 가버렸나 하고 날 몇십 분 동안 찾았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야외에서 자고 있는 나를 보며 분노에 이를 갈았다고 했다..(미안). 다행히 웃으면서 넘어갔지만, 아직까지 이 여행을 이야기하면 회자되는 에피소드 중 하나.
그리고 후쿠오카로 가는 비행기에서, 옆자리의 아주머니에게 펜을 빌리면서 후쿠오카 여행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야마카사'라는 축제가 있다는 정보를 들었더랬다. 공식 명칭은 하카타 기온 야마카사(博多祇園山笠). 이 축제는 700년 이상 이어져 온 봉납제사의 일환으로 매년 7월에 개최된다. 기원에 대한 여러 설이 있지만, 역병퇴치를 기원하며 축제가 이어져왔다는 것이 유력하다고 한다. 한 가지 걸리는 점은 참여하기 위해서는 새벽 4-5시에 일어나야 했다는 점이었다. 나는 이 때 멋있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 살짝 미쳐있었기 때문에, 당일 1-2시에 자면서도 포토스팟을 위해서 반드시 여기에 갈 것이라는 포부를 친구에게 밝혔다. 친구는 전날 일정 때문에 피곤해서 못가겠다며 혼자 갔다오라고 했고, 결국 혼자서 축제 장소에 향했다. 힘들게 일어난 탓에, 나도 한 5시 반쯤 장소에 도착하였는데 사람이 한가득이었다. 한 가마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환호를 하며 맞이했다. 뒤로 갈 때마다 더 화려한 가마가 등장했는데 형형색색의 가마가 정말 장관이었다.
그리고 유명한 모모치해변과 후쿠오카 타워에서도 한 컷. 다른 장소로 이동해야하는 일정 때문에, 직접 물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시원하게 물장구를 치며 저마다의 방법으로 재밌게 노는 사람들 덕분에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역동적인 피사체가 되어주어서(?) 고맙기도 했다. 이제는 여행의 계획을 짤 때, 이렇게 타이트하게 짤 엄두가 안나기 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는 이 여행. 충분히 2017년의 한 페이지로 기념할 만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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