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쇼크의 여파인지, 코로나 이전의 많은 기억이 어딘가로 날아갔다. 마스크를 쓰는 게 적응이 안되어서, 집을 나설 때 깜빡하고는 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마스크를 안 쓰고 돌아다닌 적도 있었지 하는 느낌이다. 일본 온 뒤로 거의 쓰지 않는 한국 핸드폰은 배터리가 거의 고장나다시피해서, 한 몇 시간은 충전해야 겨우 켜질까 말까 한다. 며칠 전에 한국 폰에 담긴 데이터가 필요해서 잠깐 켜게 되었는데, 의외로 사진첩에 추억이 꽤나 담겨 있었다. 그 중 하나가 2019년 4월 30일에 떠난 카와고에 여행인데, 2019년 캘린더를 체크하며 그 때의 추억을 좀 되짚어보려고 한다.
딱 이 때가 4월 말에서 5월 초까지의 골든위크 시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는 외국인 전용 기숙사에 살고 있었는데, 골든위크 이전까지는 이래저래 행정처리를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한창 일본살이에 적응하는 때였다. 그러다 정신을 차릴 쯤에 골든위크가 왔는데, 약간 수능끝나고 대학 들어가기 직전에 전공에 대한 공부를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처럼, 이 때가 연구에 시간을 쏟을 기회야라고 생각했을 때였다. 지금 생각하면, 마음 편히 놀러다닐 수 있는 시기를 왜 그런 편치 않은 마인드로 아깝게 소비했는가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시기에 온전히 안 놀았던 건 아니었다. 따로 에노시마 여행을 다녀온 다음 날, 기숙사 친구들과 함께 카와고에(川越)로 향하게 되었다.
★ 카와고에는 이케부쿠로에서 덴샤로 약 3-40분밖에 걸리지 않아, 당일치기 근교여행으로 제격이다.
전통적인 쿠라즈쿠리(蔵造) 방식으로 지어진 건물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 카와고에(川越)는, 코에도(小江戸) 즉, 작은 에도로 불린다. 상점가, 절터, 무사의 집 등에서 옛날 에도 거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향한 날은 비가 왔고, 나를 포함한 카와고에로 향한 4명은 모두 여행 스케줄을 세심하게 세우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가서 명소를 둘러보자, 맛있어보이는 걸 먹자, 유명한 온천 스팟에 가자 정도의 합의를 하고 카와고에로 향했다. 비가 추적추적 와서 그런지 나의 카와고에에 대한 인상은, 흙 냄새 나고 황량함이 묻어있는 곳이었다. 우리가 제일 먼저 향한 곳은 카와고에의 키타인(喜多院).
카와고에의 명소 중 하나인, 키타인(喜多院)은 도쿠가와 이에미츠(徳川家光)가 태어난 방이 있는 것으로 유명. 일본 에도 막부의 제3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츠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자라고 한다. 당시에는 그저 카와고에에 유명한 절이 있다는 것만 듣고, 무작정 찾아갔지만.. 가기 전에 미리 알았으면 이래저래 진득하니 봤었을 텐데. 또한 카와고에 7복신 중 하나이며 인도에서는 암흑의 신으로 분류되는 대흑천(大黒天)을 모시는 곳이라고 한다. 역시나 다양한 신을 믿는 일본 다웠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본의 절이나 신사의 분위기가 꽤 신선했던 시기였기에 굳이 방문했던 듯.
그리고 기억에 남는 것이 카와고에의 심볼인 시간의 종, 토키노카네(時の鐘). 시간을 아는 것이 쉽지 않았던 일본 칸에이(寛永, 1624-1645)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지역민들에게는 자주 카네츠키도(鐘撞堂, 종을 치는 당)라고 불린다. 이 종은 하루 네 번 울리는데, 오전 6시, 정오, 오후 3시, 오후 6시에 울린다고 한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거리의 풍경과 하늘이 달라져, 종이 칠 때마다 저마다의 운치를 느낄 수 있다고. 종소리의 음색이 일본에서는 꽤나 좋은 평가를 받아 1996년에 일본 환경성에 의해서 "일본의 음풍경 100선(日本の音風景100選)"으로 공인받았다고 한다.
이 거리에는 "스타벅스 카와고에 종이 있는 거리의 점포(川越鐘つき通り店)"가 존재한다. 거리의 풍경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거리 디자인을 고려하여 설계했다고 하는 이 점포도 카와고에에 오면 들러야 할 명소 중 하나이다. 이 점포에만 판매하고 있는 커피도 존재하며, 매장 안쪽에는 넓은 유리창 바깥으로 정원 및 테라스석이 보인다. 비가 오는 날이었지만 바깥 풍경이 예쁠 정도로, 참 예쁜 컨셉 스타벅스였던 듯. 커피향과 종소리의 여운에 젖어 편안히 쉬어가도록 하자.
여행의 클라이막스였던 온천. 이 곳까지 가기위해서 꽤 시골길을 길게 걸었던 기억이 있다. 여기에 진짜 온천이 있기는 해?라고 할 정도로 딱히 뭐가 안보이는 길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온천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이 온천의 이름은 "작은 여행 카와고에 온천(小さな旅 川越温泉)"인데, 내 상상 속에서 그리고 있었던 노천온천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이후에도 노천온천이 딸려있는 호텔과 같은 곳을 가봤었는데, 욕탕에 천장만 뚫려있거나 유리창으로 쳐져 있는 식의 노천온천이 많았다. 그런데 이 날, 노천온천에 들어가니까 엄청나게 비가 쏟아지는데 산성비에 머리카락이 빠질까 걱정은 되었지만, 쾌감이 엄청났다. 비바람이 몰아치는데 따뜻한 온천에서 목욕을 할 수 있다니! 그리고 나무 기둥이 비를 애매하게 막아주던 욕탕이 있었는데, 거기 있으면 적당한 비만 쳐들어오는 터라 굉장히 좋았다. 정말 일본에 와서 간 노천 온천 중에 다섯 손가락 정도엔 들지 않을까. 물론 비가 온다는 특수한 환경이긴 했지만.
그렇게 카와고에를 돌고 저녁을 먹을 때쯤, 우리는 시부야로 돌아와서 샤브샤브 무한리필을 먹었더랬다. 남자 넷이서 어찌나 전투적으로 먹었는지, 처음엔 질 좋은 고기가 나오다가 점점 냉동으로 바뀌더라. 나중에는 점원이 와서, 좀 불편한 내색을 하며 슬슬 가셔야 할 시간이라고 말하더라. 보통이면, 아니 우리가 무한리필 시켰는데 내쫓을라 그래? 했겠지만,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정말 많이 먹기는 했다.. 나는 다음날 저녁까지 아무것도 안 먹어도 배부를 정도였으니까..
이상으로 짧게나마 2019년에 갔었던 카와고에의 추억을 되돌아보았다. 당일치기 혹은 1박2일로 도쿄 근교여행을 갈 생각이 있다면, 카와고에를 방문하는 것을 꽤 추천한다.
'여행 > 일본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쿄 근교 타카오산 당일치기 여행! 가벼운 등산으로 제격! (12) | 2022.01.24 |
---|---|
후쿠오카 3박4일 여행, 2017년 여름(후쿠오카 타워, 모모치 해변, 다자이후, 야나가와, 기린맥주 공장, 유노하나 온천). (22) | 2022.01.15 |
에노시마 카마쿠라, 도쿄 근교 당일치기 여행 (0) | 2022.01.06 |
닛코(日光) 도쿄 당일치기 근교 여행 (2) | 2021.12.31 |
일본 도쿄 근교 1박2일 시모다 여행 (2021년 9월, 시모다야마토칸) (6) | 2021.12.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