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때문에 계속해서 집에 박혀있던 2020년 여름 어느 날, 혼자 도쿄에서 가볍게 등산이나 가볼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냥 서울에서 관악산 오를까 정도 하는 마음으로, 도쿄에서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산 없나 하고 찾았더랬다. 그런데, 생각보다 도쿄에서 등산할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산에 가려면 생각보다 멀리 나가야 했다. 오를 만한 산으로서 대표적인 후보지는 4개가 있었는데, 타카오산(高尾山), 미타케산(御岳山), 미하라산(三原山), 츠쿠바산(筑波山)이 그것이다. 심지어 츠쿠바산은 이바라키 현(茨城県)에 있었고, 미하라산은 오오시마 섬에 있기 때문에 마음을 좀 크게 먹고 가야했으므로, 소거법으로 삭제. 타카오산은 포장도로가 많아서 산을 오르는 느낌은 없다길래 미타케산으로 갈까 했었으나, 미타케산에는 진지하게 "곰 출몰 주의가 필요하다고.." 곰을 쫓는 방울(熊鈴)이라도 가져가야 한다길래, 미타케산도 선택지로서 삭제했더랬다. 결국 당시는 등산 플랜이 엎어지고, 그냥 지천에 깔린 바다나 보러가야겠다 하고 요코하마로 향했다..(?)
실제로 타카오산에 간 건 2020년 가을 즈음, 친구들과 함께 가게 산에 오르게 되었다. 정말 깔끔한 포장도로로 정비되어 있는 루트가 많아서, 본격적인 등산을 원하는 사람은 싫어할 수도 있겠다 했다. 다만, 이 때는 너무 운동부족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가 딱 좋았다고 할까. 긴팔 맨투맨 하나 걸치고 서서히 물들어가는 단풍도 보며, 콧바람을 쐴 수 있는 곳이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위로 올라갈 수록 바람이 서늘해서 좀 추웠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타카오산은 텐구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많은 산이다. 일반적으로 텐구란 산중에 살고 있는 요괴이며, 안광이 강하고 코가 길며 부리가 있다는 특징이 있다. 코난의 '키리텐구 전설 살인사건(霧天狗伝說殺人事件)'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였더랬다. 타카오산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텐구가 살고 있다고 하는데, 다이텐구(大天狗)와 코텐구(小天狗)가 그것이다. 빨간 얼굴과 큰 코를 가진 다이텐구는 부채를 가지고 다닌다는 특징이 있다. 다이텐구는 신통력으로 사람의 운을 트이게 해준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에 비해 파란 얼굴을 하고 있으며, 까마귀를 닮은 부리를 가지고 있는 코텐구는 검을 들고 다닌다는 특징이 있다. 코텐구는 검으로 사악함을 쫓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타카오산을 올라가면 텐구 동상이 참으로 많은데, 텐구에게 참배를 하러 타카오산에 오는 사람들도 있는 듯.
올라가다 보면 삼밀의 길이라고 적힌 문이 있는데,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참으로 코로나 시대를 저격한 네이밍이 아닐 수 없다. 2020년 밀(密)이 일본의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만큼, 코로나 시대 이후로 일본에서는 밀이라는 말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코로나 때 일본은 삼밀(三密)을 피하라(No!3密)라는 말을 강조했는데, 이것은 「밀폐(密閉)」「밀집(密集)」「밀접(密接)」을 피하라라는 말이다. 풀어서 말하면, 환기가 잘 안되는 밀폐공간을 피하자, 많은 사람이 빽빽히 모이는(밀집하는) 장소를 피하자, 근거리로 커뮤니케이션(밀접)을 하는 상황을 피하자는 것이다.
이에 비해서 이 타카오산에 적힌 삼밀은, 불교의 종파 중 하나인 진언종(真言宗)의 가르침이다. 진언종은 각각 바른 행동, 바른 언행, 바른 마음을 의미하는 「신밀(身密)」, 「구밀(口密)」, 「의밀(意密)」을 터득할 수 있는 수행을 강조한다. 우연히 밀이라는 단어가 겹치면서 화제를 모은 문이었다.
타카오산의 정상은 599m에 있을 정도로, 귀여운 뒷산이다. 타카오산 말고도, 근처에 있지만 타카오산보다는 살짝 높은 시로야마(城山)・카게노부야마(景信山)・진바산(陣馬山)을 정복해도 좋을 듯. 왜 같은 OO山인데 어떤 건 야마라고 읽고, 어떤 건 산이라고 읽나 해서 찾아봤더니 기본적으로 산 전체가 신앙의 대상인 경우 산이라고 읽고, 그 이외를 야마 혹은 타케(岳)라고 읽는 듯하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이런 읽는 법은 정말 터득하기 어렵다. 네이티브한테 물어보면 결국 하나하나 왜 그렇게 이름 붙었는지를 생각하기 보다는, 단순히 '감'이라고..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참 어려운 듯.. 그건 제쳐두고, 초록과 빨강이 공존해 있는 타카오산의 단풍과 저 멀리 보이는 후지산이 멋있어서 좋았다.
올라가는 건 걸어 올라왔지만, 내려올 때는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 언제였나 확실히 기억은 안나지만, 산을 올라가는 것은 관절에 좋지만 내려오는 것은 관절에 무리가 간다고 한 TV 프로그램을 본 이후로, 굳이 산을 내려오는 것을 즐기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케이블카에서 펼쳐지는 풍경이 또 장관이니 내려올 때는 이왕이면 케이블카를 추천한다! 내려와서는 근처의 소바집에서 허기를 해결하고, 근처의 카페에서 노닥노닥거리다 귀가하였다. 도쿄에서 가볍게 등산을 하고 싶다면, 타카오산을 한번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개인적으로는 단풍이 물드는 시즌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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