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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담/일본 유학

문부성 국비장학생의 일본 도쿄대 연구생 입학, 그리고 석사 입시(3)

by 몰두 2022. 2. 10.

★문부성 국비장학생의 일본 도쿄대 연구생 입학, 그리고 석사 입시(2)에서 계속.

https://doowhatiwant.tistory.com/26

 

문부성 국비장학생의 일본 도쿄대 연구생 입학, 그리고 석사 입시(2)

★문부성 국비장학생의 일본 도쿄대 연구생 입학, 그리고 석사 입시(1)에서 이어짐. https://doowhatiwant.tistory.com/24 문부성 국비장학생의 일본 도쿄대 연구생 입학, 그리고 석사 입시(1) 문부성 국비

doowhatiwant.tistory.com

 

 사실 논문 구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이전에, 나는 논문을 쓰는 법에 있어서도, 정치학에 있어서도, 내가 관심을 가진 지역의 분야에서도 전혀 문외한이었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 더 나아가 타지에서의 생활 경험이나 자취를 해본 경험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막막함은 언제나 불안으로 배가되어 다가왔더랬다. 논문에 대해 이래저래 구상하기 시작했던 시기 이후로는, 그런 불안으로부터 눈과 귀를 막기 위해서 무작정 전공 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연구를 이제 막 시작했을 당시에는, 무엇을 연구문제로 삼을지에 대한 갈피조차 못 찾았다. 대체 어디를 시작점(切口)로 삼아야할 지조차 감이 안 왔다. 지나가는 안면 있는 석박사들에게, 어떤 식으로 연구문제를 설정해야 하는지 물어보고 다녔지만, "그래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데.."라는 의문을 해소해주는 조언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근본적으로 나는 모든 영역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했으므로, 어디를 열심히 파서 연구문제를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많은 고민들이 산재해있었지만 논문과 정치학에 대한 이해는 제쳐두고, 나는 일단 내가 연구하고 싶은 테마에 관련된 책부터 모으기로 하였다.

 

 일단 내가 가지고 있었던 연구 테마에 대한 키워드는 "산업 정책"과 "도상국의 발전"이었기 때문에, 관련 원서를 택배로 주문하기로 했다(인터넷 배송으로 오는 데까지 또 한 나절 걸리는 책들이었다). 택배로 주문한 책을 각잡고 읽을랬더니, 영어 원서를 완독한 적이 거의 없어서 읽는 속도가 드럽게 느렸다(동시에 일본에 왔는데 왜 나는 영어 원서만 줄창나게 읽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나한테 필요한 부분을 찾아서 읽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책 읽듯이 '모든 글자를 빠짐없이' 읽었으니.. 읽는 요령이 없으니까 시간이 훨씬 더 걸렸다. 지금이야 책을 읽을 때 보다 '뼈대'에 집중했음 좋았을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때를 기점으로 생각해보면 논문의 뼈대가 애초에 뭐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던 때였으니까, 그렇게 읽었던 것이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그 책의 저자는 내가 관심있는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는 개념'을 살짝 비틀어 새롭게 정의하고, 그것을 중심 개념으로 하여 이야기를 이끌어 갔는데, 문제는 내가 '일반적으로 널리 쓰인다는 개념'에 대해서 전혀 무지한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무슨 책 한 권이 깨지지 않는 암석마냥 너무 단단한 느낌이었다. 그 때의 막막했던 나에게 지금의 내가 한 마디 해주자면, 점점 읽은 책이 쌓여갈수록, 그 바위덩이 같은 책이 조금씩 물러질 것이라는 것이다. 겨우 석사 논문 한 번 쓴 사람조차도 느껴질 정도니, 교수들은 이런 책 하나 읽는 것 쯤이야 이골이 났겠지.. 어쨌든, 나는 그 책 하나를 연구생 여름방학이 반 이상 지나갈 때까지도 계속 붙들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벌써 테마를 잡았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자꾸 나와 비교하게 되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마 나는 내가 읽고 있는 책이 내 논문의 큰 틀을 구성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확신하고 있었으므로, 내가 선택한 방법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던 지라 흔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겨울의 코마바도서관 앞.

 그 책과 사투를 벌이기 이전에, 나는 수업 이외에 독서회에도 참여하기로 했다. 지도교수님 이외에 내 연구 분야와 크게 관련 있는 교수님이 주최하시는 독서회였는데, 그 독서회의 참가자들은 대부분이 박사들이었고, 다른 학교의 교수님과 외부에서 실무직으로 일하시는 분도 한 분씩 계셨다. 내가 연구생 때 석사 1학년으로 들어왔던 같은 제미의 원생이 추천해줘서 들어가게 되었는데, 참가자들의 수준이 꽤 높은 만큼 이제 막 연구생으로 들어온 나로서는 좀 많이 벅찬 시간이었다. 게다가 보통 독서회가 13시에 시작하면, 휴식시간도 거의 없이 19시에 끝나곤 했으니까 체력적으로도 힘들었고,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전문용어가 섞인 문장을 들을라니 안그래도 일본언데 못 알아듣겠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그럼에도 석사가 끝나가는 지금까지 나는 한 번도 빠짐없이 그 독서회를 참가해왔다. 내가 공부하는 분야에서 연구하는 박사와 교수가, 내 연구 분야의 화제의 책에 대해서 이래저래 이야기를 한다니, 못 알아들어도 일단 부딪혀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구를 어떻게든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해서, 내가 극히 좁은 내 관심 분야의 책과 논문만을 읽고 있는 가운데, 독서회에서 오고가는 대화는 내 연구 분야에서 제너럴하게 어떠한 논의가 행해지고 있는가에 대한 인사이트를 주었다. 그들이 당연히 읽어봐야 한다고 말하는 책과 논문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런 부분은 좀 연구해봐야겠다, 이 연구자는 이런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더라, 요즘 트렌드는 이렇더라" 하는 엑기스 같은 이야기는 결과적으로 내 연구생 때의 논문의 서론과 결론에서 크게 도움이 되었다. 나아가서 신속하게 석사 논문의 주제를 잡는 데에도 크게 신세를 졌다. 이러한 경험에서 굳이 독서회가 아니더라도, 석박사들끼리의 사적인 공부회도 많은 모양이니 연구생 및 석사 논문을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탐색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앞벤치
졸업할 즈음이 되니 갑자기 좋은 벤치가 등장했다.

 

 그리고 연구생 여름방학 직전, 교수님과 연구 테마에 대해서 한 번 더 상담을 하기로 하였다. 아직 메인 책 한 권도 다 읽지 않은 상태였고, 최소한의 수업만 들었음에도, 그 수업에 따라가기조차도 버거웠기에, 논문 테마가 제대로 구체화되지도 않았었다. 게다가 한국어로만 생각해놨었기 때문에, 직전에서야 "파파고의 힘을 빌려서" 부랴부랴 일본어로 바꿔 보여드렸더랬다. 결과는 지도교수님의 "어떤 테마를 하려는지 키워드를 보면 느껴지긴 하지만,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다."는 대답이었다. 더해서, 일본어 쓰기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받았다. 직전에 촉박하게 쓴 것이었기 때문에, 평소에 수업 준비를 하는 것보다도 시간을 덜 썼으니 그럴 수밖에.. 특히 전문 용어의 번역 미스가 좀 큰 느낌이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industrialization(산업화)"로 통하는 것이, 일본에서는 "공업화(工業化)"라고 말해야 하니까. 그런 단어 하나에서 핀트가 나가 버리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잘 안 와닿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머릿속에서 한국어로도 잘 구체화가 안되어있으니 내 문장을 내가 봐도 너무 지리멸렬한 느낌이었다. 그걸 일본어로 게다가 파파고에 의존해서 번역했으니, 교수님은 무슨 죄인가.. 딱딱 정리해서 가도 부족할 판에 준비 안 된 상황에서 갔으니, 다시 생각해봐도 너무 이불킥을 유발하는 시간이었다. 30분 정도 시간을 내주신다고 했으나 거의 1시간을 소모해버렸더랬다.. 더해서, 이 때 교수님은 여름방학 직전까지도 내가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내심 많이 걱정을 하셨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막판에 스퍼트를 끌어 올려서 겨우 끝낼 수 있어 다행이었지..

 

코로나 때는 폐쇄되었던 쪽문. 이 쪽이 열린 것만으로도 소소한 행복.

 

 결국 한국도 가지 못한 채 여름 방학이 어느새 끝나가 버렸지만, 내가 끈질기게 붙잡았던 책 한 권과 독서회의 덕택으로, 모래성을 쌓을 재료가 어느 정도 모이게 되었더랬다. 튜터와 계속 상담해가면서, 10월쯤 최종적으로 연구문제를 잡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도교수님이 특히 논문의 형식 면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는 것을 말해주면서, 어떤 식으로 각 장을 전개하면 좋을지에 대한 코멘트를 많이 줘서 고마웠다. 한편으로는 슬슬 논문기한에 후달리기 시작했는데, 왜냐하면 석사 입시 필기시험에 대한 준비도 해야했기 때문이다. 필기시험이 1월 말이었으므로, 준비에 1달은 필요했기 때문에 적어도 논문은 연말까지는 끝내야 했다. 그 와중에 어느 정도 수준의 전문용어까지 논문에 일일이 다 설명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자잘한 고민부터, 가설이 너무 "tricky한 것이 아닌가"에 대한 중대한 고민까지 뇌 안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과연 내 논문이 통과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10-11월 쯤에 하늘을 찔렀다. 그리고 한글로 다 쓴 후에, 일본어로 바꿔야 했는데, 이것이 또 만만치 않게 시간이 드는 작업이었다. 결국엔 나는 연말까지 논문을 다 쓰지 못했다.. 아직도 2019년의 마지막 날이 기억난다. 유튜브로 시부야 리얼타임 영상을 보면서 카운트다운만 잠깐 보다가, 다시 논문을 쓰던 그 날.. (너무 惨め하다..) 코마바 맥도날드와 마이바스켓 스시 도시락(그 때는 이상하게 사먹을 만 했다.. 지금은 먹으라고 해도 못 먹겠는데..)을 먹으면서 1월 초순 정도까지 논문을 어떻게든 끝내버렸고, 내 안의 지식을 쥐어짜서 한 하루 이틀 동안 석사 과정에서 수행할 연구계획서를 구상해 프린트하는 데에 성공한다. 단시간에 그래도 생각한 티가 나는 연구계획서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원천은, 평소에 참여했던 독서회와 수업이 아니었을까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체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왔나 싶은데, 논문과 연구계획서 끝낸 그 날에 나는 바로 필기시험의 준비에 들어갔다. 예상보다 한 10일 정도 늦어서, 2주 조금 넘게 남은 시간 내에 필기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와 같이 석사 입시를 준비했던 '전우(?)'들이 필기시험 준비할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말을 할 때 마다, 나는 더욱 가슴을 졸이곤 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같은 연구과 내에서도 모두 다른 전공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노하우를 전수받을 여지도 없었다. 필기시험 날의 압박과 기억은 아직까지 생생할 정도로 꽤 큰 공포였다. 연구생 포스팅의 클라이막스, 필기시험 포스팅은 다음으로 넘기는 걸로.

 

★다음 포스팅은 여기로.

https://doowhatiwant.tistory.com/38

 

문부성 국비장학생의 일본 도쿄대 연구생 입학, 그리고 석사 입시(4)

★문부성 국비장학생의 일본 도쿄대 연구생 입학, 그리고 석사 입시(3)에서 계속. https://doowhatiwant.tistory.com/34 문부성 국비장학생의 일본 도쿄대 연구생 입학, 그리고 석사 입시(3) ★문부성 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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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학원의 장단점, 문과와 취업의 상관관계(1)는 여기로.

https://doowhatiwant.tistory.com/30

 

일본 대학원의 장단점, 문과와 취업의 상관관계(1)

먼저 일본 대학원의 장단점을 거론하기에 앞서, 도쿄대 문과 대학원을 나온 사람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적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싶다. 또한, 나는 연구생에서 석사과정까지 마치고,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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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부성 국비장학생의 일본 도쿄대 연구생 입학, 그리고 석사 입시(1)는 여기로.

https://doowhatiwant.tistory.com/24

 

문부성 국비장학생의 일본 도쿄대 연구생 입학, 그리고 석사 입시(1)

문부성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된 이후, 2019년 4월 도쿄대 총합문화연구과로 일본에 무사히 오게 되었다. 오자마자 약 한 달 동안은, 행정처리로 무척이나 바빴던 기억이 난다. 구청 가서 각종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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