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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담/일본 유학

문부성 국비장학생의 일본 도쿄대 연구생 입학, 그리고 석사 입시(2)

by 몰두 2022. 1. 21.

★문부성 국비장학생의 일본 도쿄대 연구생 입학, 그리고 석사 입시(1)에서 이어짐.

https://doowhatiwant.tistory.com/24

 

문부성 국비장학생의 일본 도쿄대 연구생 입학, 그리고 석사 입시(1)

문부성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된 이후, 2019년 4월 도쿄대 총합문화연구과로 일본에 무사히 오게 되었다. 오자마자 약 한 달 동안은, 행정처리로 무척이나 바빴던 기억이 난다. 구청 가서 각종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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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생 때 들었던 수업을 수월했던 수업부터 감상을 써보자면, 논문 쓰기 수업은 JLPT 학원 문법반에 다니는 느낌이었으나(안 다녀봤지만), 내 관점에서는 논문 집필에 그리 실용적이지는 않았다. 논문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을 다루는 수업이긴 했지만, 약간 내가 원했던 수업과는 결이 달랐다고 해야 하나. 일본에서 어느 정도 살았던 경험이 있지 않은 외국인에게는 더욱이, "부자연스러운" 일본어로 논문을 집필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쓰이는 한자식 표현이 일본에서는 쓰이지 않거나, 미묘하게 다르거나, 특정한 문맥에서는 아예 그 표현을 쓰는 것이 부적절한 경우도 있다. 또한 나는 명사 앞에 많은 수식언을 붙이는 경우가 있는데, 일본어로 직역하게 되면 그 문장이 간결하지 못한 경우가 왕왕 있다. 비유하자면, 영어권 국가가 아닌 나라의 저자가 쓴 영어책을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물론 어느 정도 뜻이 통하기는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논문을 집필하는 경우, 한 문장을 몇 번이나 읽어야 하고 저자가 의도한 문장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도 존재할 수 있다. 비록 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일본에서 살았지만, 나는 이러한 문제가 결국 나라마다 생각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기원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보다 자연스러운 일본어로 논문 집필을 하기 위해서는, 결국 각자가 쓴 논문을 계속해서 교정해 나가야한다고 생각하는데, 매주마다 교정 과제를 주고받는 것이 강사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나아가, 결국 원생의 글을 고친다는 건 전공지식과 문맥을 제대로 알아야 고쳐줄 수 있는 건데, 일본어학에 정통한 교수가 아무리 연구생-석사 단계의 지식이 요구되어진다고 할지라도 모든 학생의 전공을 커버할 수 없다는 사실도 이유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총체적인 평가론, 어느 정도 도움은 되었지만 내가 듣고 싶었던 수업은 아니었던 느낌.

 

헤이세이 30년도 시험 과거문제.

 

다음으로, 지도교수님의 일방형 수업 강의는 전공에 관한 배경지식을 익히는 차원에서 좋았다. 특정 지역에 관심이 있었지만 그 지역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한 사람으로서, 이 수업은 그 지역에 어떤 정치경제적 이슈가 존재하는지를 알려주는 수업이었으므로 꽤 유익했다. 이 즈음, 내 머릿속은 "연구질문 세우기"로 가득찼었는데, "선행연구가 다수 존재하여 많은 사람들이 다뤄왔던 주제이지만, 선행연구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며 내 논문의 가설의 오리지널리티를 입증하기"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내가 관심있는 지역에서 어떠한 정치경제적인 이슈가 존재하는 지를 파악해야만 했다. 이 수업이 연구 문제를 친절하게 제시해주기까지 하는 수업은 아니었을지라도, 훗날 연구에 어떠한 내용들이 포함되면 좋을 지에 대한 방향성을 알게 해준 수업이었다.

 

또, 이 수업에서 도쿄대(혹은 일본 대학원?)의 문화를 알게 된 점도 있었는데, 첫 번째 수업에서 자기소개와 함께 "나는 왜 이 수업을 들으러 왔나, 나는 이 수업에 어떤 점에 관심이 있어서 들으러 왔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야했다는 것이 참 신선했다. 사실 나는, 간단히 말하면 재밌어 보여서, 내 관심사랑 얼추 맞으니까 라는 '직감'에 의존해 골랐던 것인데, 소개를 하기 위해서라도 그 느낌을 더욱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지금이야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어가니까 훨씬 낫지만, 그 때는 너무 갑작스러워서 신속하게 머릴 굴리느라고 애를 썼던 기억이 있다. 결국, 그러한 질문은 "내 연구에 대한 관심사"를 구체화하는 것을 돕기 때문에 선순환을 형성할 수 있다고 본다. 동시에, 흥미를 자극하는 수업일 지라도, 내 관심사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관심사와 일치하는 수업을 듣는 것이 더 낫다는 이야기로도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싶긴 하다. 그리고, 이 수업은 일본어로 처음 듣는 수업이었기 때문에, 수업 내내 긴장한 탓에 수업을 들은 직후에 너무 머리가 아팠더랬다. 긴장을 조금이라도 풀면 강의가 그냥 흘러 지나갈까봐 두려웠던 것도 있고, 문장에서 한 글자를 못 알아들었을 때 아예 모르면 상관없는데 "좀 알듯말듯한 단어"가 나올 때 그 단어가 뭐였지 생각하고 있으면, 이미 내용이 저 멀리까지 가버릴 때도 있었다. 그래서 이 수업이 끝나면 기숙사에서 좀 자야 머리가 좀 풀리곤 했다. 

 

가이던스 때 받은 석사과정에 관한 여러 팜플렛들.

 

마지막으로 들었던 세미나형 참관 수업이 가장 힘들지 않았나 싶다. 세미나형 참관 수업은, 일명 제미(ゼミ)형 수업이라고 불리는데 제미(ゼミ)란 독일어 ゼミナール(Seminar)의 준말이다. 이는 교수의 지도에 따라 적은 인원의 학생이 특정 테마에 대해서 연구, 보고, 토론하는 형식의 대학 수업을 가리킨다. 결국 똑같은 "Seminar"에서 온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세미나와 제미를 구분해서 사용한다. 세미나는 제미와는 다르게, 특정한 테마에 대해서 개최되는 강연회, 발표회를 의미한다.

 

제미가 진행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대체로 영어 원서 텍스트를 읽고, 매 주마다 각 장의 발표자를 정한다. 발표자가 그 장을 요약한 레주메를 만들어 와 그 레주메를 바탕으로 발표자가 보고를 진행한 뒤, 자신이 이 글을 읽고 느낀 감상 및 논점을 제시하며 토론을 이끌어 간다. 한국과 좀 다른 점은, PPT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워드로 개조식(箇条書き)으로 정리해서 레주메를 만들고, 발표자가 대본을 따로 만들어와서 줄줄 읽어도 상관없다. PPT를 사용하기는커녕 대본을 읽기만 해도 된다는 점에서 좀 문화충격을 받았다. 다만, 외국인인 나에게는 대본을 외울 필요 없이 열심히 만들어가기만 하면 됐으니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현재 이러한 방식에 적응된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온전히 내용 구성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 오히려 좋다는 느낌이다(사회인이 되면 다시 PPT에 적응해야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데, 나는 처음 제미형 수업을 들었을 때, 말 그대로 한 마디도 못하고 그냥 수업이 끝났다. 머릿속에 할 말은 있었지만 타이밍에 맞춰서 스무스하게 대화의 흐름에 끼워맞추는 것도 어려웠다. 한국어로는 소위 "이빨만 잘 털면" 10을 준비해도, 20을 이야기할 자신이 있었지만, 일본어로는 100을 준비해도 10을 이야기하기조차 어려웠다. 무엇보다 수업에서 너무 말이 빠른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오죽하면 그 당시에 저 사람이 하는 말을 다 알아듣는 걸 일차적인 목표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을까. 지금은 다행히 그 분의 말이 느려진건지 내 이해력이 좋아진건진 모르겠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핵심을 관통하는 질문"을 하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았다. 물론, 질문을 하는 것에 있어 정답은 없다. 하지만 논문에 대한 타당한 비판이나 코멘트, 보다 생각할 거리를 많이 불러 일으키는 질문, 전체적인 글의 흐름을 관통하는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참 수련이 많이 필요한 것 같다. 당시의 나는 질문의 퀄리티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매 수업마다 한 마디도 못한 것에 대해서 자책을 하면서 끝나곤 했다. 어쩌다 발언을 하나 했다 쳐도, 내가 발언한 것임에도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실력부족만 느끼면서 악순환의 반복이 계속 되었달까. 그래도 다행인 건, 내가 발표자일 때의 보고를 무사히 끝마쳤다는 점이다. 그 발표 하나 하는데 근 2-3주를 투자했는데, 다행히 같이 수업을 들었던 튜터님이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셔서 마음이 놓였다.

 

매트랩
매트랩 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무료로 이용 가능하다는 팜플렛.

 

그렇게 지도교수님의 수업을 몇 번 들었을 때 쯤, 나는 비로소 지도교수님과 1대1 면담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그 전에 튜터에게 들었던 나에 대한 교수님의 평가는, 일본에서 살지 않았는데도 공손한 말씨로 메일을 쓸 줄 알아서 놀랐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게, 일단 어디에선가 교수님에게 메일을 쓸 때는, 메일 쓰는 방법이 따로 포맷이 존재할 정도로 예의를 갖춰서 보내야한다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메일 하나 보내는데 검색해가면서 몇십 분을 붙잡고 보냈었으니, 정성을 들였다는 것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금방 밑천이 드러났다는 것. 지도교수님의 일방형 수업에서 거의 매주 수업에 대한 코멘트를 제출해야 했고, 어떠한 연구를 진행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해서 보여드렸는데, 결국 "읽는 것과 말하는 것은 꽤 잘하지만, 쓰는 것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해주시기에 이른다. 언제나 젠틀한 어조로 말씀하시는 분인데, 팩트를 말해주시니 좀 마음이 쓰렸다. 그래도, 읽는 것과 말하는 것은 좋은 평가를 받아 다행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하였다..

 

이런 흐름으로 수업을 들으며 논문을 구상하기 시작했는데, 논문 준비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 하는 걸로.

 

★다음 포스팅, 문부성 국비장학생의 일본 도쿄대 연구생 입학, 그리고 석사 입시(3)는 여기로.

https://doowhatiwant.tistory.com/34

 

문부성 국비장학생의 일본 도쿄대 연구생 입학, 그리고 석사 입시(3)

★문부성 국비장학생의 일본 도쿄대 연구생 입학, 그리고 석사 입시(2)에서 계속. https://doowhatiwant.tistory.com/26 문부성 국비장학생의 일본 도쿄대 연구생 입학, 그리고 석사 입시(2) ★문부성 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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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비유학생 준비 이야기는 여기로

https://doowhatiwant.tistory.com/18

 

문부성 국비유학생 합격 수기(문과)

이번 포스팅은 일본 문부과학성 장학생 시험에 관한 경험담을 적어보려고 한다. 사실 벌써 3년 가까이 지난 이야기이고, 연구유학생 합격 이후로 도일, 석사 입학시험, 졸업논문이라는 과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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