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이 참 좋아하는 벚꽃, 사쿠라. 에도시대의 유명한 시인 마츠오 바쇼(松尾芭蕉)도 「さまざまなこと思い出す桜かな (다양한 것을 상기시키는 벚꽃이려나)」라고 읊조렸듯이, 일본 문학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벚꽃을 보며 샘솟는 자신의 감정을 작품에 녹여내기도 했다고 한다. 더하여, 시간이 지날 때마다 즐길 수 있는 멋이 달라진다는 의미에서 朝桜(아침의 벚꽃, 아사자쿠라)・夕桜(저녁의 벚꽃, 유우자쿠라)・夜桜(밤의 벚꽃, 요자쿠라)라는 단어를 따로 붙인 것에서, 잠깐 피었다 지는 벚꽃을 진득하게 감상했던 일본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벚꽃은 일본에서 3월 중하순에 남쪽부터 서서히 피어오기 시작하는데, 기상청에 따르면 도쿄의 경우, 2022년 벚꽃의 개화시기는 3월 23일 정도라고 한다. 벚꽃이 피기 전에는 복사꽃과 매화를 전채처럼 감상해주자. 위에 코마자와 올림픽 공원과 사이고우야마 공원에서 찍었던 사진은 개인적으로 매우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벚꽃만 기다렸던 사람들을 비웃을 정도로, 한창 때의 매화와 복사꽃은 매우 아름답기 그지없다. 서서히 꽃이 피어오르는 풍경을 보면, 또 한 해가 시작되는 것이 느껴진다. 어릴 때는 겨울에 사라졌던 녹음이 어느샌가 서서히 나타나는 광경을 보고 감탄하는 것에 공감이 덜 갔는데, 산책하다 그런 풍경에 문득 마음이 리프레쉬되는 자신을 돌이켜보니 감회가 새롭다.
낮의 벚꽃을 찍었던 이 날은, 사진을 찍어주러 졸업식에 참석하려고 나카메구로로 걸어가던 날이었다. 날도 그렇게 춥지 않고, 날씨도 좋았었기에 사진이 잘 찍히겠구만 하고 기분좋게 걸어가던 날이었더랬다. 졸업식이 좀 느지막이 끝날 것 같다고 연락을 받았기에, 벚꽃을 좀 찍을 시간이 생겼다. 코로나 이전에는 벚꽃이 피는 날이면, 항상 관광객이 정말 많았던 기억이 나는데 사람이 드문드문뿐이 없는 것을 보니, 관광객이 아예 못들어온다는 것이 훨씬 실감이 나곤 했다. 항상 벚꽃이 잘 찍히는 다리 변에는, 잠깐 서기 위해서도 좀 기다려야할 정도로 사람이 많곤 했는데. 물론, 좋은 사진을 자유롭게 찍을 수 있다는 건 편했다. 카메라에 벚꽃을 꽉 채워 찍기 위해서 이래저래 돌아다니며 사진에 담았다.
요자쿠라를 본 것은, 근처에서 친구들과의 저녁약속이 끝난 뒤였다. 막차시간 즈음해서 다들 집으로 흩어졌을 때, 나는 문득 나카메구로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무렵쯤 다음 날의 숙취가 신경쓰여서, 술자리에서 물을 잔뜩 먹는 습관이 있었는데, 도저히 걷지 않고는 못 배길 느낌이기도 했다. 그것도 그렇고, 나카메구로 강은 내가 자주 애용하는 산책코스 중 하나인데, 평소부터 요자쿠라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술기운이 잡생각이 드는 것을 틀어쥐고 있을 때, 갑자기 번쩍 든 요자쿠라에 대한 충동은 자연스레 몸을 그 쪽으로 이동시켰다. 평소에도 오샤레한 가게들이 많은 곳인데, 벚꽃이 피니까 훨씬 화려함이 더해졌다. 벚꽃 향기보다는 라일락 향기에 가까운, 뭉뚱그려 말하면 봄의 향기가 마스크 안까지도 스며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강에 비친 가로등의 불빛마저 카메라에 예쁘게 잡히는 터라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아직도 강을 유유히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갈 때의 시간이 생각날 정도.
끝으로 벚꽃이 져갈 무렵을 일본어로는 "葉桜の季節(하자쿠라의 계절)"이라고 표현한다. 하자쿠라는 직역하면 이파리 벚꽃 정도 될까? 개인적으로는 벚꽃이 지고 난 이파리마저도 벚꽃의 연장선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인상깊었다. 메일 인사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표현이라 볼 때마다 신선한 느낌. 조금만 지나면 벚꽃이 피고 졌다가, 언제 추웠냐는 듯 여름이 오는 루프가 또 오겠지. 올해에도 나카메구로에서 벚꽃을 즐겨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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